해시태그 시그네, 2022

 

해시태그 시그네 감독 크리스토퍼 보글리 출연 크리스틴 쿠얏 소프, 아이릭 서더, 앤더스 다니엘슨 리게본 2023.01.11. 해시태그 시그네 감독 크리스토퍼 보글리 출연 크리스틴 쿠얏 소프, 아이릭 서더, 앤더스 다니엘슨 리게본 2023.01.11.

내가 불행해지면 자꾸 남에게 관심이 가. 절망과 불안의 철학자 세렌 키에르케르고가 부정성의 대왕이라면 나는 부정성의 방자, 사바나 아리퀴, 봉천동의 방탕한 아들, 양양의 물집, 불광동의 도깨비풀 정도는 된다. 한식 유행에 대해 K-푸드의 역습이라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 때마다 인도는 카레로 세계를 제패했나, 짜샤?라고 되물었다. 현대 이전 근대가 규율을 강조하는 부정성의 사회(: ‘~해서는 안 된다’)였다면, 근대 이후 현대는 유캔두잇의 긍정 사회(: ‘~할 수 있다, 해야 한다’)다. 현대 이전의 기독교인들은 원죄라는 연좌제를 받아들이고 속죄의 삶을 살았지만 근대 이후의 기독교인들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노래한다. 교리 위반이지만 이를 지적하는 기독교인은 더 이상 없다. 현대 사회가 재빠르게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과잉 찬양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자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를 강조한 부정성은 악덕이 됐다. 규율은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이 되었고, 의심(: 부정, 회의, 후회, 갈등, 성찰, 반성)은 창조의 파괴자가 되었고, 불안과 절망은 영혼을 갉아먹는 바이러스가 되었다. ” 자신을 믿습니까? 라고 말할 때 NO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전희없이 뺨을 사정없이 발기하세요. ” 빠라빠라빠라ピ. 현대사회는 21세기 들어 긍정심리학과 결탁한 신학과 맞물려 더욱 극단적인 초긍정 사회가 된다. 인간은 자기계발 훈련을 통해 무엇이든 성공할 수 있다. 스스로를 계발하는 데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니 놀라운 발상이다. 결국 성과를 내려면 자신을 착취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놀고 있을 때 공부하고, 사람이 쉬고 있을 때 일하라. 자기착취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노력 위에 노오력이 있고, 노오력 위에 노오력이 있다. 근대가 개인을 발견했다면 현대는 자기(사랑)를 착취하는 방식을 개발한다. 개인과 나의 차이는 명확하다. 개인은 연대에 관심이 있지만 자신은 연대에 관심이 전혀 없다. 내가 불행해지면 자꾸 남에게 관심이 가. 절망과 불안의 철학자 세렌 키에르케르고가 부정성의 대왕이라면 나는 부정성의 방자, 사바나 아리퀴, 봉천동의 방탕한 아들, 양양의 물집, 불광동의 도깨비풀 정도는 된다. 한식 유행에 대해 K-푸드의 역습이라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 때마다 인도는 카레로 세계를 제패했나, 짜샤?라고 되물었다. 현대 이전 근대가 규율을 강조하는 부정성의 사회(: ‘~해서는 안 된다’)였다면, 근대 이후 현대는 유캔두잇의 긍정 사회(: ‘~할 수 있다, 해야 한다’)다. 현대 이전의 기독교인들은 원죄라는 연좌제를 받아들이고 속죄의 삶을 살았지만 근대 이후의 기독교인들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노래한다. 교리 위반이지만 이를 지적하는 기독교인은 더 이상 없다. 현대 사회가 재빠르게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긍심을 과잉 찬양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자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를 강조한 부정성은 악덕이 됐다. 규율은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이 되었고, 의심(: 부정, 회의, 후회, 갈등, 성찰, 반성)은 창조의 파괴자가 되었고, 불안과 절망은 영혼을 갉아먹는 바이러스가 되었다. ” 자신을 믿습니까? 라고 말할 때 NO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전희없이 뺨을 사정없이 발기하세요. ” 빠라빠라빠라ピ. 현대사회는 21세기 들어 긍정심리학과 결탁한 신학과 맞물려 더욱 극단적인 초긍정 사회가 된다. 인간은 자기계발 훈련을 통해 무엇이든 성공할 수 있다. 스스로를 계발하는 데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니 놀라운 발상이다. 결국 성과를 내려면 자신을 착취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놀고 있을 때 공부하고, 사람이 쉬고 있을 때 일하라. 자기착취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노력 위에 노오력이 있고, 노오력 위에 노오력이 있다. 근대가 개인을 발견했다면 현대는 자기(사랑)를 착취하는 방식을 개발한다. 개인과 나의 차이는 명확하다. 개인은 연대에 관심이 있지만 자신은 연대에 관심이 전혀 없다.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이 연출한 노르웨이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Sick of Myself, 2022>는 긍정사회가 낳은 웃지 못할 풍자 코미디>로, 신체 변형을 다룬 보디 호러가 뒤섞였다. 주인공 시그네(여)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평범한 여성으로, <타인>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에만 관심이 있는, 자신이 돋보이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관종이다. 이러한 인간형은 나르시스트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이 좋은 코멘트를 받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지만, 그렇습니다,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시그니처도 마찬가지다. ” 좋아요에 대한 집착은 좋아요로 돌아온다. 그녀는 타인의 관심을 독점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 속 시그니처는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로 일부러 금지약물을 과다 복용해 스스로 병에 걸린다(이 영화의 원제는 Sick of Myself다). 자기 연민과 자기애착(자기애)이 낳은 기괴한 풍경이다. 그녀가 과잉 불행의 신데렐라가 되면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쇼펜하우어가 그런 말을 했다: 내가 불행하면 자꾸 남에게 관심이 간다_는 것이다. 주인공 시그니처가 타인의 관심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남의 관심을 독식하려면 자신을 극단적인 불행으로 몰아가야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불행을 통해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종특이다. 나의 불행이 곧 당신의 행복.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자기 자신을 파괴(혹은 착취)하는 것이다.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는 자기계발이 낳은 긍정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몇 년 전 유튜브에서 이상한 라이브 방송을 실시간으로 본 적이 있다. 20년 가까이 애지중지 키운 반려견이 자연사로 죽는 모습을 실시간 송출한 라이브 방송이었다. 그 반려견의 주인이자 방송 진행자였던 사람은 흐느끼며 손에 카메라를 든 채 집요하게 죽어가는 개를 촬영했다. 실시간으로 애도의 댓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가 죽어가는 장면 뒤의 풍경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사랑하는 개가 죽어 가는데 고작 카메라를 들고 그 죽음을 생중계하다니. 그녀의 애도는 죽은 개에 대한 슬픔이었을까, 아니면 개가 떠나고 남게 될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욕먹는게 목에 걸렸어. ■ 덧쓰기가 유익하다면 꼭 좋은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이 연출한 노르웨이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Sick of Myself, 2022>는 긍정사회가 낳은 웃지 못할 풍자 코미디>로, 신체 변형을 다룬 보디 호러가 뒤섞였다. 주인공 시그네(여)는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평범한 여성으로, <타인>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에만 관심이 있는, 자신이 돋보이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관종이다. 이러한 인간형은 나르시스트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이 좋은 코멘트를 받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었지만, 그렇습니다,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시그니처도 마찬가지다. ” 좋아요에 대한 집착은 좋아요로 돌아온다. 그녀는 타인의 관심을 독점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 속 시그니처는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로 일부러 금지약물을 과다 복용해 스스로 병에 걸린다(이 영화의 원제는 Sick of Myself다). 자기 연민과 자기애착(자기애)이 낳은 기괴한 풍경이다. 그녀가 과잉 불행의 신데렐라가 되면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녀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쇼펜하우어가 그런 말을 했다: 내가 불행하면 자꾸 남에게 관심이 간다_는 것이다. 주인공 시그니처가 타인의 관심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남의 관심을 독식하려면 자신을 극단적인 불행으로 몰아가야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불행을 통해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종특이다. 나의 불행이 곧 당신의 행복.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자기 자신을 파괴(혹은 착취)하는 것이다. 영화 <해시태그 시그네>는 자기계발이 낳은 긍정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몇 년 전 유튜브에서 이상한 라이브 방송을 실시간으로 본 적이 있다. 20년 가까이 애지중지 키운 반려견이 자연사로 죽는 모습을 실시간 송출한 라이브 방송이었다. 그 반려견의 주인이자 방송 진행자였던 사람은 흐느끼며 손에 카메라를 든 채 집요하게 죽어가는 개를 촬영했다. 실시간으로 애도의 댓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개가 죽어가는 장면 뒤의 풍경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사랑하는 개가 죽어 가는데 고작 카메라를 들고 그 죽음을 생중계하다니. 그녀의 애도는 죽은 개에 대한 슬픔이었을까, 아니면 개가 떠나고 남게 될 자기 자신에 대한 연민이었을까? 욕먹는게 목에 걸렸어. ■ 덧쓰기가 유익하다면 꼭 좋은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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